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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해빙/ 이서윤. 홍주연 지음

by 근사한 삶 2020.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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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해빙 

The Having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 

더해빙 /이서윤 /홍주연

 

"내 인생을 바꿔놓은 책!"

미국에 선출간된 최초의 한국 자기계발서!

작은 습관 하나로 부와 행운을 누릴 수 있는 마법의 감정. Having!

 

 

 

더해빙 /이서윤/홍주연

Having위 핵심은 편안함이예요. 부자여서 마음이 편안한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안한 마음이 우리를 부자로 이끌어요."

 

이서윤

대한민국 상위 0.01%가 찾는 행운의 여신. 세계 최대 출판그룹 펭귄랜덤하우스에서 선출간한 그녀의 책은 프랑스,이탈리아, 러시아 등 20여 개국에 판권이 수출되며, 부와 행운의 법칙을 전 세계에 전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가 로스쿨 학생이던 시절 대통령의 자질을 알아보고 그를 세상에 알린 출판 에이전트 제인 디스털은 (더 해빙)의 전세계 에이전트를 자처하며"돈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 가짐을 가장 새롭게 담고 있는 책이다"라고 말했다. 책을  먼저 읽은 미국과 유럽의 독자들은 "매일 아침 이책의 글귀를 읽는다."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덕분에 큰 행운이 찾아왔다" 등의 감사 매일을 보내며 그녀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이서윤은 사주와 관상에 능했던 할머니의 발견으로 일곱 살 때 운명학에 입문했다. 할머니가 본 어린 손녀의 삶은 행운을 불러오는 운명이었다. 할머니의 지원과 이서윤의 신념으로 주역과 명리학,자미두수, 점성학 등 동서양의 운명학을 빠짐없이 익혔고, 10만 건의 사례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그녀에 대한 소문은 부자들의 귀한 비밀이었다.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자신을 찾아오는 부자들의 자문에 응했고 이후 연세대 경영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해 세상에 필요한 공부를 했으며, 미국과 유럽 등지를 오가며 세계 각지의 운명학 대가들과 교류하며 내공의 깊이를 더했다. 그녀에게 자문을 구하는 이들은 대기업의 오너와 주요 경영인, 대형 투자자 등 상위 0.01%에 해당하는 부자들이다. 그들은 이서윤의 조언에 따라 전략을 수정하거나 조직의 인사를 단행하고 투자를 결정했다.

 

개명전 이름은 이정일. 저술한 책으로는 (오래된 미밀),(운, 준비하는 미래),(내가 춤추면 코끼리도 춤춘다)등이 있다.

 

홍주연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사회부와 산업부 등에서 10년가까이 기자로 일했다. 2008년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경영컨설팅 회사 맥킨지앤컴퍼니에서 대외협력 담당 이사로 근무했다. 기자로 일하던 시기 이서윤을 만났으며, 10여 년 후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 그녀로 부터 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 Having 를 배우고 실천한 뒤 이 책을 함께 집필했다.

 

더해빙 /이셔윤 /홍주연

프롤로그

 

"그녀는 사람들을 부와 행운의 길로 인도해주는 운명이다."

신문에서 읽은 그 한 구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비행기 날개 아래로 이름 모를 산맥들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나는 "행운의 여신"이라 불리는 한 여성을 만나기 위해 유럽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될 사람. 그녀는 많은 이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이름은 이서윤, 마음가짐의 대가 master of mindser, 통찰력의 여왕 insight pueen, 비저너리 인 치프 visionary-in-chief, 대너리스 타가리옌(왕자의 게임)...모두 그녀에게 붙은 별칭이었다.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동양 여성인 서윤을 향해 서양인들은 구루guru라는 칭호를 붙여 부르곤했다. 존경하는 정신적 지도자라는 의미를 담아 경애와 믿음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서윤이 특별한 삶의 길을 걷게 된것은 일곱 살 때부터였다.

어린 나이에 동양의 고전을 마스터하고 수만 명의 데이터를 구해 사례 분석까지 마친 그녀는 '부자들의구루'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십 대에는 서양의 고전을 흡수하며 통찰의 폭을 넓혀갔으며 미국,유럽 등지를 찾아가 그곳의 스승들과 지혜를 나누었다. 서윤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이들은 대기업 창업주나 주요 기업의 경영인, 대형 투자자 등 상위 0.01%에 속하는 부자들이었다. 그들 사이에 그녀의 이름은 귀하고 비밀스러운 정보였다. 그들은 서윤에게 자문을 구한뒤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거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등 인생의 퀀덤 점프를 일루어냈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서윤의 운명을 가장 처음 알아본 사람은 그녀의 할머니였다. 중국인들을 상대로 포목 사업을 하던 할머니는 사주와 관상을 보는 일에 능했다. 중국 상인들은 거래에 앞서 상대의 사주를 보는 관례가 있었고, 그렇게 익힌 운명학(역학)으로 손주들의 운을 살펴보던 중 할머니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손녀 서윤이 매우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아이였기 때문이다. 기사에 따르면 할머니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아이는 내가 운을 다루는 공부를 시키겠다. 이 공부를 하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더해빙/ 이서윤 /홍주연

 서윤을 만나게 되면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부와 행운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한 부자로 살 수 있을까? 사실, 몇 달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나에게 이런 부탁을 남기셨다.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진정한 부자로 살려무나. 그 방법을 찾아 너의 삶을 누리렴."

 

 부모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탁월한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닌 내가,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부자가...과연 될 수 있을까?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을 이루어드릴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에게 한 동료가 그 사람이라면 방법을 알 거라 말해주었다. 바로, 부자들의 구루 이서윤.

 

그녀에 대해 알아갈수록 나는 불안한 마음만 커졌다. 정재계 인사들도 만나기 힘든 사람이라는데,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수소문해 어렵게 찾아낸 그녀의 행방을 좇아 비행기에 올랐지만 그녀가 다시 신기루처럼 사라졌으면 어쩌지?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잡념을 떨치기 위해 앞좌석에 달린 테이블을 내리고 노트를 펼쳐 그녀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늘을 희생하지 않고 현재를 즐기면서도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언제 어떻게 돈이 들어오기 시작할까?'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질 수 있을까?'

 '과연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직선적인 질문을 적으며 노트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비행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순간 본능적인 예감이 들었다.

 그녀를 만나고 나면....지금과는 다른 삶이 펼쳐질 거 같아.'

 

 


아버지는 굴비를 좋아하셨다. 생신 때나 명절 때 가장 드시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늘 똑같은 대답을 하셨다. 굴비라고, 어릴 적 친적집에서 먹어본 입맛을 당기는 그 감칠맛이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씀하실 때 마다 그 맛이 또 생각 나시는지 입맛을 쩝쩝 다시고는, 굴비를 천장에 달아놓고 바라보기만 했던 자린고비 이야를 덧붙이시곤 했다.

"그렇게 아끼고 절약해야 한다."

 아버지에게 자린고비 이야기는 여전히 절약의 미덕, 그 대명사였다. 이제 그런 이야기는 웃음의 소재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실제로 아버지는 평생 천 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으셨기 때문에 차마 토를 달 수 없었다. 굴비를 마음껏 사드셔도 될 돈이 생긴 이후에도 아버지는 스스로 한 번도 굴비를 사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1950년대에는 온 나라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기였다. 뽀죡한 생계수단이 없었던 아버지의 가족은 매일 배를 곯아가며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징집을 피해 숨어 있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밖에 나가 음식을 찾는 일을 아버지와 몇살 더 많은 큰아버지의 몫이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어린 형제는 바지런히 돌아다녔다. 밤이 되면 고양이처럼 살금 살금 기어나가 곡식 낱알을 주워 왔다. 낮에는 몸집보다 큰 가방을 둘러메고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쌀겨로 만든 희멀건 죽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졌다. 아이들이 파는 아이스크림은 팔리는 날보다 팔리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짊어지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아가는 날이면 아버지의 눈에서는 눈물부터 나왔다고 한다. 저녁을 굶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돈에 대해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어린 아버지에게 가난이란, 배고픔과 두러움 그리고 잠재적인 죽음을 의미했다. 세월이 흘러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 시절을 맞이하게 된 이후에도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씀하곤 했다. 다시 한 번 그때처럼 가난해지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고통스러운 배고픔의 기억 때문인지 아버지는 평생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다. 퇴직 후 충분히 먹고 살만큼의 돈을 마련한 뒤에도 그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언제라도 가진 것을 다 잃고 무일분이 될 수 있다. 돈은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축하라고 있는 것이지."

 

 이 말을 기도문 처럼 읊으며 늘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하셨다. 세수하고 난 물은 양동이에 모았다가 변기 물 내릴때 썼다. 옷을 사 입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싸구려 벽돌색 잠바 하나로 10년 넘게 겨울을 났으니 말 해 무엇하랴.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그 낡아빠진 잠바로 추위를 견뎌냈기 때문이다. 

 

 절약이 몸에 배다 보니 돈이 드는 일은 일절 하지 않으셨다. 아침에는 맨손 체조 후 혼자 바둑을 두셨다. 점심은 집 근처복지관에서 해결했고 오후에는 강변을 산책하셨다. 외출했다 집에 돌아올 때는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재활용 수거함이나 이사간 집들을 기웃거려 버려진 옷이나 신발, 가전제품등을 주워왔다. 그렇게 모인 잡동사니는 방 하나를 가득 채웠고, 고물상 같은 그 방은 아버지에게 보물상자가 되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던 아버지에게 그날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몸무게가 갑자기 줄어서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같은 말을 들은 것이다.

 

"췌장암입니다. 벌써 많이 진행이 되었네요. 수술은 힘들겠습니다."

 

 아버지가 암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해야하지? 무얼 할 수 있을까? 머릿속이 뒤엉키는 와중에 굴비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시는, 그러나 돈을 아끼느라 자주 드시지못한 그 굴비 말이다. 당장 백화점으로 달려가 진열된 상품 중 가장 좋은 것을 골랐다. 열마리에 30만원. 나는 앞으로 이걸 몇번이나 더 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내가 보낸 마지막 굴비였다. 무서운 속도로 자란 암세포가 소화기관을 눌러버렸기 때문이다. 굴비를 받은지 몇주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더 이상 음식을 소화시킬 수 없게 되었다.

 

암이 발병한 것을 알고도 아버지는 놀라울 정도로 한결같았다. 아끼고 절약해야 한다는 그 오랜 믿음을 고수한 것이다. 여전히 쓰고난 세숫물은 양동이에 모았고 가장 싼 사진관을 찾아 영정사진을 찍었다. 무엇보다 고집을 부리신 건, 암 병동에 입원했을 때 6인실에 머무르겠다는 것이었다. 입원비가 하루 만 원 정도인 그곳에서 아버지는 가족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고, tv채널을 마음대로 고르지도 못했다. 자식 생각도 해달라고 아버지에게 화도 내보고 설득도 해보았지만 아버지에게는 다 쓸데없는 돈 낭비일 뿐이었다.

 

6인실 침대에 누워 아버지가 잠 못 이루고 근심한 것은 역시 돈 문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이 돈이 아닌 자식들의 돈이 걱정이었다.

 

 '너희들이 가난하게 살까 봐 두럽다. 내가 이제 너희에게 도움을 줄 수도 없지 않느냐. 얼마나 절약하고 얼마나 저축할지 계획표를 세워 와라. 5년,10년 단위로 자세하게 만들어 가지고 오너라."

병상의 아버지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수입과 비용을 분석한 뒤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겠다는 계획표를 완성했다. 침상에 누운 아버지는 종이에 적힌 숫자를 확인한 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었다. 다리와 발은 퉁퉁 붓기 시작했고 등은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야위어 갔다. 갈수록 말수도 줄어들었다. 병실을 찾아갈 때마다 아버지는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히고 앉아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무슨 생각을 그토록 골똘히 하셨는지 몇 주가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병원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꼭 해야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황급히 달려간 나를 보고 아버지는 손부터 잡으셨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그때 어떤 예감을 한 것도 같았다. 

"나는 부자가 되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다. 그래서 아끼기만 했지. 그러나 결국 이루지 못했구나. 돌이켜보면 후회도 된다. 아끼는 것만 생각하느라 행복한 순간순간을 놓친 건 아닌지......,그동안 너에게 절약하라고 했던 말을 이제 모두 거두고 싶구나, 현재를 희생하지 말고 진정한 부자로 살려무나. 그 방법을 찾아 너의 삶을 누리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나는 그 자리에서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며칠 후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아버지 옆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온 마음을 담아서 말했다.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제 삶을 누리는 행복한 부자로 살게요. 그 방법을 꼭 찾을 게요. 맹세해요."

 초점없이 천장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할 일을 마쳤다는 듯 아버지는 그날 밤 돌아갔셨다.

 

장례를 치르고 부모님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는데. 냉동실 구석에서 굴비 다섯마리가 우르르 솓아져 나왔다. 꽁꽁 얼어붙은 그 생선을 보는 순간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그토록 좋아하던 굴비를 열 마리도 다 드시지 못하다니 아버지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평생 참기만 하신 걸까? 그리고 어떤 생각으로 나에게 진정한 부자가 되는 방법을 찾으라고 하신 걸까? 한참을 울다가 눈물을 훔치며 나는 굳게 결심했다.

'나는 아버지처럼 현재를 희생하며 살지 않겠어. 아버지 부탁대로 지금 이 순간을 누리며 행복을 놓치지 않은 부자로 살겠어.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진정한 부자가 되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내고야 말겠어.'

 

 

더해빙/이서윤/홍주연

 

술술 쉽게 읽히는 책 

 

"삶이란 내안의 여러가지 '나'를 찾아 통합시켜가는 여정이죠. 우리는 결국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해요. 사람은 자신다워질때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내면의 힘을 발견하게 되죠."77p

하늘에는 측량하기어려운 비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불행과 복이 있다. 79p

 "진짜 부자는 돈을 쓰면서 그것을 기쁨으로 누릴줄 알죠. 지금 주머니에 얼마가 있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해빙은 단돈 1달러라도 '지금 나에게 돈이 있다' 것에 집중하는데서 시작해요."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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