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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돌봄/타라브랙

by 근사한 삶 2022.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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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돌봄

타라브랙지음

이재석.김선경옮김 

 

누구보다 사랑하고 싶은 나를 위한 자기 치유법

 

"지금 이순간 나부터 사랑하라!"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불안과 불확실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저자

타라브랙의 실천적 자기 사랑법

 

 

자기돌봄

 

프롤로그

 

나를 울게 내버려두지 마라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지만 자기를 알려고 하는 노력,

이 노력을 통해서 '여행'은 시작된다.

 -오쇼 라즈니쉬

 

 

  20대에 불교를 만나면서 내 인생은 달라졌다. 여느 젊은이가 그러하듯 나 역시 열심히 살았다. 몸을 혹사시킬 만큼 공부하고 사회운동에 매달리며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래야만 가치 있는 인생인 줄 알았다. 마음속의 누군가가 '너는 아직도 부족하고 무언가 더 나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 끊임없이 속삭여댔다. 나는 그 마음을 늘 의식하고 눈치를 보면서 스스로를 다그쳤다. 조금이라도 느슨해진다 싶으면 게으름 떨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면 와~~!하고 기뻐하지만 그것은 잠깐, 그 뒤는 언제나 허전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 다음, 그 다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마치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는 아이처럼 막막했다. 용기의 불씨를 그러모아 다시 힘을 내보내지만 마음속으로 '지쳤어, 못하겠어.'라고 푸념을 반복했다. 앞으로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웠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럴수로 나는 더 깊은 외로움과 우울, 슬픔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나' 인데, 왜 이리 힘들고 괴로울까, 나의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는 그 고민에 매여 마치 안개속을 헤매는 듯했다.

 

  안개를 걷어준 것은 불교였다. 불교는 나를 늘 따라다니는 불안과 고통, 우울감을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나 자신은 항상 부족하고 모자라다.'는 생각에서 비롯됨을 깨닫게 해주었다. 불교는 모든 사람에게 불성佛性이 있다고 본다. 불성이란 부처, 즉 완전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완전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오히려 열등하고 무가친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래서 나아지기 위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욕망한다. 욕망은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그 욕망은 비 온 뒤의 죽순처럼 쉬지 않고 돋아난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 거기서 우리는 좌절하고 괴로워하고 절망한다. 자신을 탓하며 원망하기를 반복한다. 부처는 완전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깨달으라고 한다.그것을 깨닫는 순간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며, 모든 욕망과 괴로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 뒤 나는 여러 스승들과 수행자들을 만나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수행법을 익혔다. 임상심리학자로서 나는 불교의 교리와수행이 내가 배운 심리학 이론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불교는 단순히 믿고 따르는 맹목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체계를 갖춘 종교였다. 그 점이 나를 불교의 세계로 이끌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생각이 수많은 문제를 야기하지만 또 그 생각으로 스스로를 평화롭고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 수 있다. 신비롭지 않은가? 나는 크고 작은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온갖 생각을 당장 멈추고 그 생각 너머에 있는 진짜'나'를 깨닫기를 바랐다. 물론 그런 가르침이 삶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모두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살아있는 한 우리에게 고통은 모습을 달리할 뿐 끝없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우리가 할 일은 스스로를 보살피는 것이다.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울게 내버려두지 않은 것이다.  자유롭고 고요하고 평온한 '나'에 이르기 위한 빠르고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돌보는 길밖에 없다. '자기돌봄', 지난 20여 년간 내가 학생들과수련생들에게 강조한 것은 이 한마디로 모아진다.

 

 

 

자기 돌봄은 잠시도 생각이 끊어지지 않는 내 마음이 엉뚱한 곳으로 달아나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의 쳇바퀴를 멈추고(멈춤), 순간순간 깨어있으면서 내 마음을 관찰하고 (깨어있기,마음챙김), 진짜 '나'를 인식하여 (통찰), 마침내 나를 사랑하고 온 세상을 껴안기 (포용,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다.

 

 

 

깨어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깨어있기 혁명mindfulness revolution' 이라는 말이 있다. '깨어있기'는 매 순간 나에게 일어나는 일과 그에 대해 내가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의식의 특징이다. 한마디로 '현재를 자각하다.'라는 뜻이다. (깨어있기는 '마음챙김'이고도 하며 의미와 뜻은 같다.) '형명' 이라는 다소 격한 표현을 쓴 것은 '깨어있기'를 통해 나자신에게 매우 크고 심오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깨어있기' 명상을 가르쳐온 나는 이단순한 수련법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정신적 명료함을 가져오며 우리의 가슴을 열어주는지 수없이 확인하고 경험했다. 놀라운 것은 깨어있기가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 주변 사람들 등 그가 속한 세계를 변화시키고 치유한다는 점이다. 그 힘이 차츰 넓어지면 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깨어있기의 힘은 수천 년 동안 많은 명상가들에게서 전해져 왔으며, 오늘날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수많은 뇌 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이 '명상이 몸의 통증과 불안, 우울을 완화시키며, 활력과 기억력을 향상시킨다.' 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제 명상을 신비주의에 갇힌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혹은 특정 종교의 수행법 정도로 여기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깨어있기는 교육과 의료 정신건강, 중독 등 여러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마음관리' 단체는 물론 집이나 회사, 학교 등 일상에서 명상을 하는 이들 또한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깨어있기를 실천하는 이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활용하여 바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여 온전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사실 당신과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 모두 그런 힘을 모른 채 바깥에서만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면 손에 열쇠를 들고 엉뚱한 곳에서 찾아 헤매는 격이다. 

 

 

 

 

바쁘다는 것은 마음을 죽이는 일이다.

 

  우리는 문득 삶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순간의 나는 어떤 모습인가. 이런저런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과 진심으로 소통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들이느라 바쁘다. 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들의 판단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인다. 미래를 걱정하고 수많은 계획과 다짐을 세우느라 잠시도 생각을 놓지 못한다.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지만 늘 뭔가 빠져 있는 것처럼 허전하다···.

 

  한자 '바쁠망忙'은 '마음 심心'과 죽을 망亡'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바쁘다'에는 '마음을 죽인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보통 '정신없이 바쁘다.'는 말을 즐겨 쓴다. 그런데 정신이 없다면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서서히 삶의 속도를 높여가며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하나씩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간다. 학교에 들어가고 직장을 구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삶의 궤도를 바쁘게 밟아가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지혜로부터, 그리고 가슴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친숙했던 주위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모든 일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불편해한다. 

 이때 느끼는 낯섦과 불안, 불만, 부정, 허전함은 내 본래의 가슴, 편안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일종의 '향수병'이다. 향수병은 태어난 집과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다. 본래 순수하고 고요하고 평안한 존재로서 '나'가 바로 나의 '집'이자 '고향'이다. 그 집을 잃어버리거나 너무 멀어졌을 때 우리에게는 돌아가면 된다. 깨어있음은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내가 느끼는 현재의 모든 감각과 감정을 자각함으로써 '나'라는 순수한 존재에 마음을 열게 한다. 나의 '집'에 돌아온 나는 비로소 안전하고 자유로워진다.

 

 

 

가슴과 마음은 어떻게 다른가

 

깨어있기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순간을 어떠한 판단도 개입시키지 않은 채 바로 보는 것이다. 깨어있기 mindfulness는 '마음챙김'으로도 변역하는데, '가슴챙김heartfulness' 과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마음minde과 가슴heart은 어떻게 다른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마음과 가슴을 동일어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은 어떤 현상에 대해 머리로써 판단하고 일으키는 나의 반응이며, 가슴은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바라보는 순수한 '나'다. 즉 진짜 '나'는 가슴에 있다. 그 가슴을 닫아둔 채 내 경험과 판단이 지어낸 마음을 좇아가기 때문에 우리 삶은 계속 불안하고 갈등하고 불행한 것이다. 깨어있기는 바로 내 마음의 모습과 현재를 자각함으로써 가슴 속의 진짜 '나'를 깨우치도록 이끈다.

 

  가슴속의 진짜 나를 알면 이리저리 쏠려 다니는 마음을 다룰 수 있다. 시시각각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감정과 생각, 느낌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게 한다. 이는 소금과 물고 비유할 수 있다. 만약 작은 그릇에 소금을 집어넣으면 거기 담긴 물은 매우 짠맛이 날 것이다. 하지만 호수에 소금을 조금 넣는다고 호수에서 짠맛이 나지는 않는다. 우리의 마음이 호수라면 지금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동요하지 않고 품어 안을 수 있다. 

 

  마음챙김과 가슴챙김, 이두 날개는 호수처럼 드넓은 공간으로 '나'라는 존재를 이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도 편안하고 자유롭게 쉬어 갈 공간을 내면에 만들어 준다. 그 공간은 '사랑의 찬 현존現存'이라는 성소聖所다. 그 성소에서 나는 나와 세상의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느끼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사랑의 존재'로 거듭난다. 자연이 모든 인간과 생명체 안에 심어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에 찬 현존이란 다시 말하면'우리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인생에서 반드시 믿어야할 두 가지

 

  몆 년 전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라마와 교사들의 모임이 있었다. 한 교사가 '치유와 자유'라는 관점에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달라고 하자 달라이라마가 말했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가슴과 자각의 힘을 신뢰하라고 말입니다."

  달라이라마의 그 말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자신의 가슴과 자각의 힘에 대한 신뢰', 달라이라마는 우리가 인생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을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건강해지기 위해 운동을 한다. 그러나 마음의 운동은 하지 않는다. 행복해지기 위해 먹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그리고 여행을 한다. 그러나 마음은 돌보지 않는다. 현실의 고통과 괴로움을 없애기 위해 담배와 술, 약물을 복용하거나 어떤 특정한 취미에 미친 듯이 중독되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의 소리는 외면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데, 이를 믿지 않고 다른 무엇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지금 만약 당신이 슬픔, 분노, 절망, 갈등, 불안에 휩싸여 있다면 자신의 내면을 돌봐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점이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가 아니라 그 안에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 한 그루의 나무에는 무수한 가지가 있다. 우리는 그 가지에 잎과 꽃과 열매만 바라볼 뿐 땅속의 뿌리는 보지 못한다. 가지 하나하나가 일상의 '나'라면 땅속 깊숙한 곳의 거대한 뿌리가 진짜 '나'다. 그 뿌리의 힘을 인식하면, 봄 여름가을겨울 나무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비로소 나무의 평화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깨어있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다. 깨어있기는 지금 나와 나의 마음이 친구가 되는 과정이다. 우정과 관심으로 자신의 경험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우정이란 무엇일까. 친구에 대해 어떤 판단도 하지 않고, 인내해주면서 우리가 가진 시간과 관심을 쏟는 것이 곧 우정이다. 내 마음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마음을 찾아가 보살필고 돌보며, 진짜 '나'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수피 잘랄루딘 루미는 말했다.

"당신은 자기 자신에게 자주 찾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내면의 삶을 찾아가 그것과 친구가 되는 방법이 깨어있기 연습이다. 우리가 거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어느 위대한 선사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마음을 열면 우리는 모든 것과 친밀해집니다."

  나의 마음을 돌봄으로써 나의 일과 사랑. 인간관계,사물들, 햇빛, 바람, 풀 한 포기까지,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친밀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를 돌보고 있는가

 

 

  깨어있기'는 나를 보살피고 돌보는 과정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명상법 가운데 어떤 것은 당신의 기질과 필요에 맞는 반면 다소 낯설고 현재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또 자신에게 적합한 또 다른 명상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상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연구와 실천을 통해 내면의 능력을 일깨우도록 고안되었다. 명상을 신뢰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한다면 내 삶을 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나 자신에게 '깨어있는 마음'의 능력과 함께 '깨어있는 가슴'의 능력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명상의 핵심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들에게 나는 달라이라마의 짧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달라이라마가《혁명적인 행복의 기술》이란 책을 펴낸 뒤 한 기자에게서 질문을 받았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달라이라나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지금인것 같군요"

  그러자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든다. 깨어있기의 핵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깨어있기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현재를 알아차리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자각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달라이라마가 지금 이 순간을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자 당신에게도 한 가지 묻겠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까?"

 

패스트푸드 명상과 진짜 깨달음

 

 세상에는 명상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와 방법이 있다. 그 가운데는 자기계발서처럼 몇 가지 방법론을 단순하게 제시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완벽한 배우자를 찾는 3단계 '날씬한 몸매를 위한 5가지 방법' 처럼 명상을 다루는 것이다. 어느 책에는 마음 수련법 중 하나로 '이어폰을 꽃고 잠이 들면 뇌가 거기에 반응한다.' 고 쓰여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명상지도자 교육을 받은 '통찰명상협회 Insight Meditation Spcoety'에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는데 봉투에 '인스턴트 명상 Instant Meditation' 으로 잘못 적혀 있었다. 순식간에 명상이 즉석식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명상에 대한 편견이 만든 그림자일지 모른다. 

  깨어있기는 간단하게 먹고 금방 잊어버리는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오직 나의 경험과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나'에 대한 사려깊은 관찰로 잠들어 있는 가슴을 깨우는 것이다. 몇 가지 방법으로 순간의 편안함, 만족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한 존재로서의 '나'의 모습을 깨닫는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모든 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것처럼.

 

 

나의 눈물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나는 왜 나를 미워하는가. 나는 왜 나에게 늘 화가 나 있는가.

나는 왜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가. 그 모든 생각에서 멈춰라.

나에게 더 이상 잘못은 없다. 누구의 삶도 잘못되지 않았다.

 

내가 나를 힘들게 할 때 자기돌봄을 기억하라

멈추고: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살피고: 무엇 때문에 나는 불행한 것인가.

보듬고: 진정한 나는 고통에 흔들리지 않아.

껴안다: '그랬었구나' 그건 그냥 일어난 일일뿐 받아들이자.